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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은 굻었지만 자존심은 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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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경에게 무릎 꿇린 치욕

1800년대 후반 김흥락이 안동 일대에서 누린 권위는 대단했다. 1890년 안동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신임부사가 아전들과 짜고 읍민들을 착취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읍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 해결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김흥락의 중재였다.
김흥락은 유림사회와 민중들 모두에게서 신뢰를 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김흥락이 향청에 좌정하여 "무릇 민정은 순하면 따르고, 역하면 뿌리치는 법이다. 모든 폐정을 고치게 할 터이니 그대들은 물러가서 기다리라."고 한마디하니 운집해 있던 읍민들이 "그 나으리께서 우리를 속이겠는가? 그만 집으로 가세나!" 하고 모두 해산했다고 한다.
김흥락이 지닌 이러한 권위는 구한말 일제가 들어오면서 참담한 굴욕을 겪어야 했다. 그 굴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지사들은 의병운동과 항일운동에 나섰다. 인구 비율로 볼 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항일지사가 배출된 곳이 이곳 안동이다. 1896년 7월 22일 학봉 집안과 김흥락이 겪었던 굴욕은 이렇다.

김희락 의병 포대장이 지휘하는 100여 명의 의병이 안동시 북후면 웅천에서 일본군에 패전하였다. 김희락 대장은 간신히 도망하여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던 학봉종택 안방 다락에 숨었으나 발각되어 결박되었다. 이에 화가 난 왜경은 김흥락과 김흥락의 동생 김승락, 김진의, 김익모 등 평소 의병활동을 했던 집안 어른 10명을 포박하여 종가 큰 마당에 꿇어앉히고, 살림을 전부 마당에 꺼내어 금비녀 등 쓸 만한 물건은 전부 가져가고 큰살림은 못쓰게 부스는 등 종가 집안을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중략) 한참 동안 분탕질을 한 후 다른 분은 풀어놓고 김희락 대장과 같이 활동한 김진의 두 분을 안동경찰서(안동관찰부 兵隊)로 압송하였다. 김진의는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김희락 대장은 왜경의 총살 위협에도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내가 죽거든 자식들에게 보수(報 , 원수를 갚도록)를 가르쳐라!"고 지켜보던 가족들에게 소리치며 당당하게 총격을 받고 숨을 거두어 의병대장의 처절한 일생을 마감하였다.<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독립운동과 그 여맥(餘脈)>

의병대장 김희락은 김흥락과 사촌간이다. 왜병을 피해 사촌 형님 집이자 종가인 학봉 종택에 은신해 있다가 벌어진 일이다. 안동의 어른이었던 김흥락은 왜경에게 포박 당해 자기 집 마당에 무릎을 꿇는 수모를 겪었고, 사촌동생인 김희락은 총에 맞아 죽어야만 했다. 이는 개인과 집안으로 볼 때에는 수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존망을 염려한 영남의 명문 선비 집안에서 치러야만 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제, 즉 사회적 책임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안동 일대에서 절대적 권위를 지녔던 김흥락이 왜경에게 포박 당해 마당에서 무릎꿇어야 했던 사건은 안동의 유림들과 학봉 집안을 포함한 의성 김씨들에게 잊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았다. 이 치욕은 안동 유림과 학봉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흥락의 제자들 명단을 기록해 놓은 <보인계첩(輔仁 帖)>이라는 문건을 보면, 서산의 제자는 707명으로 나온다. 이 가운데 독립운동에 참여해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사람만 60명이다. 훈장 받은 숫자만 계산해서 60명이니 훈장을 받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자들이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산의 제자 가운데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을 보면 석주 이상룡(상해 임시정부 국무령), 일송 김동삼(국민대표회의의장), 기암 이중업(파리장서 주도), 대개 이승희(만주 독립군), 백하 김대락(만주 독립군), 소창 김원식(만주 의정부)등이다.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이 거의 서산의 훈도를 받은 제자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안동 일대에 거주하는 의성 김씨 천전문중(川前門中) 가운데서 훈장을 받은
이가 27명이다. 학봉의 후손만 떠져도 11명이다. 한 집안에서 27명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된 것은 전국 최고가 아닌가 한다. 안동이 양반동네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에 합당하는 사회적 책임을 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봉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