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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서산 김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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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통 정맥을 두 번이나 이은 영광

학봉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학봉집안에서 퇴계학통의 정맥(正脈)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사실이다. 학봉이 한번 받고, 그 다음에 학봉의 후손인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이 다시 받았다. 퇴계의 학통을 한 집안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받았다는 것은 영남사회에서 대단히 영광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양 정신사에서 정맥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동양의 유 · 불 ·선 삼교에서는 공통적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전법(傳法)을 대단히 중시한다. 법을 전한다는 것은 생명을 전하는 것이요, 죽음을 극복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법을 전할만한 제자를 만나지 못하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스승은 자기의 법을 전할 제자를 찾기위해 고심한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전수할 수 는 없다. '그릇이 아닌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는다[非器者 不傳]' 만약 그릇이 아닌 사람에게 법을 전하면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결국 하늘에서 견책을 받는다고 되어있다.

제자도 스승을 찾아 헤매지만 사실 깊이 들어가 보면 스승을 제자를 찾기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훨씬 더 크다. 스승은 제자를 알아 볼 수 있지만 제자는 스승을 알아 볼 수 없다. 여기서 전법제자, 즉 정맥을 받는 적전제자(嫡傳弟子)가 지니는 의미가 있다. 동양의 종교와 학문은 문자나 책을 통해 전달되는 부분 외에도 스승과 제자간의 내밀한 구전심수(口傳心授,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침)를 통해 전달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이 구전심수는 오직 적전제자에게만 전한다.
구전심수로 전달된 내용은 적전제자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불가에서는 적전제자에게 스승이 그 전법의 징표로 사용하던 의발(衣鉢)을 전수했고, 도가에서는 문파에 따라 다르지만 대게는 보검(寶劍)을 전했다. 유가에서는 스승이 보던 책이나 서첩을 전해주는 경우가 많앗다. 물론 이러한 물질적인 징표보다 심법(心法)을 전수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말이다. 퇴계학통의 정맥을 학봉집안에서 두 번이나 받았다는 것은 퇴계의 정신이 학봉집안에 살아 있다는 말과 같다.
퇴계의 학통이 전수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퇴계는 1566년 학봉의 나이 29세 때 요·순·우·탕·문왕·주공·공자·주자에 이르는 심학(心學)의 요체를 정리한 '병명(屛銘)'을 손수 써주었다. '병명'은 퇴계가 학봉에게 전해준 일종의 의발이다.

퇴계의 정맥은 학봉에게서 장흥효(張興孝)- 이현일(李玄逸)- 이재(李裁)- 이상정(李象靖)- 남한조(南漢朝)- 유치명(柳致明)에 이르렀으며, 유치명에서 다시 학봉의 11대 종손인 서산 김흥락에게 전해진다. 김흥락이 퇴계학통의 정맥을 받았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느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그 기쁨보다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이 수반하는 자리였다. 퇴계의 적전제자이자 동시에 학봉 집안의 종손이라는 영광 뒤에는 그에 필적하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권위와 책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책임 없는 권위는 성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