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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제(金溪)마을은 안동(安東) 시내에서 서쪽으로 풍산(豊山), 예천(醴泉)을 잇는 국도를 따라 5Km 쯤 가면 서의문(西義門)이 나온다. 여기서 북쪽으로 포장도를 따라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북쪽으로 학가산(鶴駕山)과 천등산(天燈山)이 자리잡고 작은 산봉우리를 이어가며 순하고 수려한 산 줄기가 남쪽으로 향하여 펼쳐진 곳에 위치하여 동서로 옹기종기 작은 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이에 따라
예부터 "열두 검제는 말로 들을 검제이지 눈으로 볼 검제는 아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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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방지(地方誌)로 가장 오래된 영가지(永嘉誌)는 "안동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속명을 금음지(今音地), 또는 금계(金溪)라 이름하기도 한다. 옛부터 천년불패(千年不敗)의 땅이라 불렀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임하(臨河)로부터 와서 살게 되면서 마을이 살기에 풍요로와 졌고 한 줄기의 시내가 마을 중간을 뚫어 흐르고 나이많은 노인을 뫼시는 집이 많으니 주변에서 노인촌이라 부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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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산자수명한 길지에 터를 잡은 입향조는 학봉(鶴峯) 선조(先祖)이다. 선조의 휘(諱)는 성일(誠一)이요, 자(字)는 사순(士純)으로 본관(本貫)은 의성(義城)이다. 학봉 선조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선조(宣祖) 원년(元年 : 1568)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弘文館) 부제학(副提學), 경상도(慶尙道) 관찰사(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도 초유사(招諭使)에 임명되어 민중의 궐기를 호소하는 초유문을 지어 각 고을에 보내 의병의 궐기와 지원을 극력 종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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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관병과 의병을 잘 조화하여 임진왜란의 삼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거두었다. 이듬해 왜적과 사력을 다한 독전 중 병을 얻어 진주성에서 순국하니 향년이 56세였다. 뒤에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었으며 문충공(文忠公)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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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선조는 퇴계선생의 적전고제(嫡傳高弟)로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영남학파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 학통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를 거쳐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李裁),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 정재(定齊) 류치명(柳致明),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 鶴峯先生의 11代孫)에 이르기 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으며 저술로는 해사록(海?錄), 상례고증(喪禮考證), 경연일기(經筵日記) 등과 문집(文集) 16권이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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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학봉 종택은 口자형 정침을 비롯하여 사당(祠堂), 풍뢰헌(風雷軒), 유물을 보관한 운장각(雲章閣), 학봉기념관(鶴峯紀念館), 문간채 등 100여칸의 건물이 고색창연하게 위치하고 있다. 특히 운장각에는 경연일기(經筵日記), 해사록(海錄) 등 학봉 선조의 친필 원고와 사기(史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교서(敎書), 유서류(諭書類) 등의 고문서 50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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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종택과 운장각 및 학봉기념관을 찾아 전국 각지에서 오신 많은 분들에게 친절한 안내와 뜻있는 관광이 되도록 보살펴 드리지 못한 점 항상 송구하게 생각하며 이 홈페이지를 통해 관심있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고 두서없이 인사에 대합니다.